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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봄, 실존 인물과 비상 계엄 1212사태

by 써니버니 2025. 2. 25.

1.줄거리

1979년 12월12일 보안 사령광 전두광(황정민 분)이 주도한 군사 반란 1212사태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전두광은 반란을 일으켜 서울을 장악하려 했고 이에 맞서는 수도경비사령관 이태신(정우성 분)과 그의 부대가 저지하려는 과정을 그린 영화입니다. 영화는 박정희 대통령의 암살 사건 이후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당시 정치적 긴장감을 생생히 전달하였습니다. 대통령이 암살되면서 대한민국은 또 한번의 큰 혼란에 빠지게 되었고 그 혼란했던 시전을 틈타 전두광이 군산 반란을 계획하게 됩니다. 하나외라는 조직을 동원하여 서울을 장악하려 했고 자신의 계약에 방해가 되는 이태신을 비롯한 주요 인물들을 식사 자리엔 초대하여 묶어 놓고 육군참모총장 정상호(이성민 분)을 납치하려는 계획을 세웁니다. 반란군은 정상호를 납치하고 서울의 주요 군사시설을 장악하며 뒤늦게 눈치챈 이태신과 그의 부대는 이를 저지하고자 필사적으로 반란군에 맞서 대적하게 됩니다. 하지만 역부족이였던 이태신과 그의 부대는 결국 전두광과 하나회에 의해 서울을 빼앗기고 체포가 되며 당시 정치적 혼란과 권련 투쟁의 모습을 생생하게 관객들에게 전달하여 보는 이들로 하여근 많은 분노와 씁쓸함을 남겼습니다. 서울의 봄 명대사가 여러가지가 있는데 쿠테타 계획에 차질이 생기며 불안해 하고 있는 하나회 회원들을 향히 전두광이 외칩니다. "실패하면 반연, 성공하면 혁명 아닙니까!" 

2.실존인물 이태신역에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의 이태신의 실제 인물로 그의 본명은 장태완 입니다. 12.12사태 당시 수도경비사령관 이었던 그는 원칙주의 스타일로 합리적인 성격을 지녔다고 알려져있습니다. 1931년 경북 칠곡 출신으로 육군종합학교를 졸업하고 교육 참모부 차장을 거쳐 수도경비사령관으로 임명됐습니다. 신군부는 장태완이 자기와 함께 하기를 원했지만 회유에 실패하자 분실로 끌고가서 조사하며 고문을 하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옳은 일은 하신 분이지만 안타깝게도 서울대를 나왔던 아들은 누가 그랬는지 행방불명되었다가 이후 죽은 채로 발견되었고, 전두환을 막으려던 정병주 특전사령관도 숨친 채 발견되었고, 진압군의 가족들은 이렇게 의문사를 하신분들이 실제로 많았다고 합니다. 장태완 전 수도경비사령관님은 1982년부터 한국마사회장을 역임하고 국회의원을 지냈지만 불행한 사태를 막지 못한 책임에 국민과 전우들에게 항상 죄송스러움을 느겼다고 하셨습니다. 반란은 신군부가 민주적 절차를 무시하고 무력을 통해 권력을 탈취한 사건으로 이는 이후 1980년 5월 광주민주화 운동으로 이어지는 배경이 되었습니다. 당시 시민들은 민주화를 요구했지만, 신군부는 강경 진압으로 응답하며 수많은 희생자를 초래했는데 얼마전 아찔했던 윤대통에 의해 이같은 무서운 일이 또한번 일어날뻔했던걸 생각해보면 이 영화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세지를 생각해봐야합니다. 

3.총평

서울의 봄은 1979년 12월12일 발생한 군사 반란으로 1212사태를 배경으로 당시 정치적 혼란과 권력투쟁을 생생하게 관객들에게 보여줬습니다. 개봉 이후 박스오피스 1위를 달성하며 흥행에 성공했고, 네이버 평점 또 한 9점이 넘는 점수를 기록한 만큼 호평 또한 대단했던 영화입니다. 제작비는 232억원, 손익분기점은 460만명으로 관객 동원 1200만 관객을 돌파하며 2023년 한국 영화중 최고의 흥행 기록을 세웠습니다. 제45회 청룡영화상에서 감독상, 남우주연상, 최다관객상, 편집상 등 4개 부문에 수상하였습니다. 서울의 봄은 신군부가 투입한 계엄군에 의하여 5.18광주 민주화 운동이 229명의 사망자, 실종자 3000여명의 부상자를 남긴 채 무력 진압되면서 종결된 대한민국의 뼈아픈 민주화 운동의 결과였습니다. 역사적인 대사건을 시로하 바탕으로 만들었다는 점과 그 반면 그 시대를 직접 겪어보지는 않았지만 수 많은 자료를 통해 역사적 사실을 알 수 있는 그때의 아픔들을 조금이라도 느껴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아무리 고증을 잘했다고 한들 그 시대를 살아보지 않았다면 전혀 느껴보지 못했을껍니다. 그래서 서울의 봄은 당시의 모든 배경과 상황을 그대로 보고 느낄 수 있도록 미술적인 부분에 상당한 공을 들였다고 합니다. 우리의 또하나의 역사를 잊혀지지 않도록 매번 마주하고 상기해야 할것입니다.